[센세키선 열차] 운명의 14시46분, 출발역에서 교차한 ‘삶과 죽음’ JR센세키선 노비루역
-상행열차는 규정대로 피난유도를 했는데, 피난소가 지진해일로 인해 몇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하행열차는 규정을 따르지 않고 열차 내에 머물렀는데 모두가 구조되었습니다.
**임기응변과 규정준수…… 결과는 극명히 달랐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3월11일 14시46분, 미야기현(宮城県) JR센세키선 노비루역(仙石線 野蒜駅)을 출발한
상/하행 2편의 열차가 있었다. 한때 행방불명으로 보도되었으나, 하행열차는 언덕 위에서 정지,
지역 주민의 유도로 승객은 차내에 머물러 무사했다.
상행열차는 JR동일본 내규에 따라 유도한 지정 피난소가 지진해일(쓰나미)이 덮쳐 몇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승객의 증언을 통해 작은 역에서 교차한 ‘삶과 죽음’을 따라가 보았다.
■상행열차: 비극적 결말……
센다이 방면 아오바도오리(あおば通)행 보통열차(4량)은 14시46분, 노비루역을 출발했다.
곧바로 격렬한 흔들림 후에 운전실에 긴급정지를 알리는 무선이 들어왔다.
정차한 곳은 역에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JR동일본은 재해 시 긴급정지 한 경우 승무원은 가장 가까운 지정피난소 등에 승객을 유도하는 규정이 있다.
지정피난소는 열차가 정지한 장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300미터 지점에 있는 노비루 초등학교 체육관.
차장 등은 규정대로 승객 약 40명을 유도했다. 그런데, 체육관에 지진해일이 덮쳐 몇 명이 숨졌다.
열차도 지진해일에 휩쓸려 탈선했다.
■하행열차: 승객의 지혜
하행인 이시노마키(石巻)행 쾌속열차(4량)도 노비루역을 출발 후, 들어올려지는 듯한 흔들림이 엄습했다.
열차는 약간 높은 언덕에서 정차했다. 차장 등이 승객 약 50명을 3량째에 모이게 한 후
피난유도를 하려 했으나, 노비루 지역에 사는 남성승객 1명이 이를 제지했다.
“(정차한 지점인) 이곳이 높으니까 차내에 있는 편이 안전하다”
모든 승객이 이 말을 따랐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지진해일이 덮쳤다. 한 순간에 집과 자동차가 휩쓸렸다.
집 지붕까지 쓸어버린 지진해일은 열차가 정차한 선로 바로 앞에서 멈췄다.
무사한 곳은 열차가 멈춰있는 언덕주변뿐……
당시 승객이었던 히가시마츠시마시에서 근무하는 시부야씨(61)는 “조금만 앞으로 나갔어도, 뒤로 갔어도 지진해일에 휩쓸렸을 것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진해일은 피할 수 있었지만, 무선도, 휴대폰도 되지 않아 구조요청을 할 수 없었다.
밤이 되자 눈보라까지 불었다. 승객들이 가지고 있던 과자 등 토산품 등을 먹으면서 어두운 차내에서 추위를 견뎠다. 아침이 되어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눈물의 재회
시부야씨는 근처 오노 시민센터 피난소에 수용되었다. 여기에서도 휴대폰은 되지 않아 가족과 연락을 하지 못했다.
회사원인 아버지와 장녀는 주변 피난소를 방문했으며 지진 4일째 되는 날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 순간을 본 시민센터 오토모 소장은 두 열차의 명암을 이렇게 말했다.
“상행열차에서 희생자가 나온 것은 유감이나, 승무원은 규정에 따랐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한편, 하행열차는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임기응변’ 대응을 취했다.
결국 이 대응이 생사를 가른 셈이 되었다”
출처: 산케이신문
[사진1: 하행열차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시부야씨와 재회한 가족들입니다]
[사진2~4: 지진해일로 휩쓸렸던 센세키선 205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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